이전 글에서 빠뜨린 것
이전 글에서 철-니켈 배터리가 리튬이온을 이기는 이유를 보였다. 소행성에 리튬은 없고, 진공에서 화재를 끌 수 없고, 철-니켈은 30~50년 가고, 과충전하면 수소를 만든다.
전부 맞다. 하지만 한 가지를 빠뜨렸다.
다이슨 모듈은 태양열 발전소다. 거울이 빛을 모으고, 열로 터빈을 돌린다. eclipse(식) 대비로 에너지를 저장해야 할 때, 지금 설계는 이렇게 된다:
태양열 (1,600°C) → 터빈 → 전기 (370 MW)
→ 잉여 전력 (~50 MW)
→ 배터리 (화학 에너지) ← 변환 2회
→ eclipse 시 → 전기 복귀 ← 변환 3회
열 → 전기 → 화학 → 전기. 변환 3회. 매 단계마다 20~30% 손실.
열을 직접 저장하면?
태양열 (1,600°C) → 일부를 축열조에 직접 저장 ← 변환 0회
→ eclipse 시 → 축열조 → 터빈 → 전기 ← 변환 1회
변환 1회. 효율 차이가 압도적이다.
태양열 발전소의 잉여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서 화학으로 바꿔서 다시 전기로 되돌리는 건,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수소와 산소로 분리한 다음 다시 합쳐서 물로 되돌리는 것과 같다. 되긴 되는데, 왜?
열 저장이 답이다. 그런데 왜 지구에서는 안 하나?
지구에서는 안 되는 이유, 우주에서는 되는 이유
지구에서 용융금속에 열을 저장하는 건 학계의 연구 주제이지 산업 현실이 아니다. 이유가 있다:
| 문제 | 지구 | 우주 (무중력 진공) |
|---|---|---|
| 용기 | 수천 톤 용융물의 중량을 지지해야 함 → 거대하고 비쌈 | 자중 없음 — 얇은 벽, 또는 아예 비접촉 |
| 단열 | 대류 + 전도 + 복사를 전부 차단해야 함 | 복사만 차단 — MLI 수십 겹이면 끝 |
| 열 손실 | 높음 — 공기 대류가 주범 | 극히 낮음 — 진공에서 대류 제로 |
| 부식 | 1,500°C 용융물이 벽면을 침식 | 전자기 부유로 비접촉 → 부식 제로 |
| 안전 | 누출 시 대형 사고 | 진공이라 화재 없음, 누출이 퍼질 매질 없음 |
지구의 약점이 우주에서는 전부 사라지거나 역전된다. 이전 글들에서 반복된 패턴 — 터빈 vs PV, 철-니켈 vs 리튬이온 — 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.
전자기 부유 축열
용융된 Fe-Ni는 1,500°C에서도 전기 전도체다 (니켈의 퀴리점 이상이라 자성은 잃지만, 도전성은 유지). 교류 전자기장을 걸면 와전류(eddy current)가 유도되고, 와전류와 자기장의 반발력으로 비접촉 부유가 가능하다.
지구에서도 실험실에서 쓰는 기술이다. EML(Electromagnetic Levitation) 용해라고 부른다. 수 g에서 수 kg의 금속 시료를 공중에 띄워 녹인다. 지구에서 더 크게 못 하는 이유는 단 하나 — 중력. 중력을 이기려면 자기장이 강해야 하고, 강한 자기장은 에너지를 먹는다. 수 kg이 한계.
무중력에서는? 이길 중력이 없다. 위치 안정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기장만 있으면 된다. 수 톤이든, 수백 톤이든, 수만 톤이든.
[축열 유닛 단면]
┌─── MLI 반사벽 (다층 반사 단열) ───┐
│ │
│ ┌── 전자기 코일 (냉각) ──┐ │
│ │ │ │
│ │ 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 │ │
│ │ ● 용융 Fe-Ni 덩어리 ● │ │
│ │ ● (1,200~1,500°C) ● │ │
│ │ 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● │ │
│ │ │ │
│ └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┘ │
│ │
└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─┘
무중력에서 용융 금속은 표면장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구형이 된다. 구형은 부피 대비 표면적이 최소 — 복사 열 손실이 최소. MLI 반사벽이 복사열을 가두고, 전자기장이 위치를 잡아주고, 벽면과는 비접촉이라 부식이 제로.
소행성에서 캐낸 Fe-Ni를 녹여서 그냥 둥둥 띄워놓으면 축열조다.
충전과 방전
[충전 — 평상시]
태양열 집광 → 복사 셔터 개방 → 금속 덩어리 가열 → 1,200°C → 1,500°C
[방전 — eclipse 시]
복사 셔터 개방 → 금속 덩어리의 복사열이 열교환기 가열 → 작동유체 → 터빈
1,500°C → 1,200°C (ΔT=300°C 활용)
충전: 거울이 모은 태양열 일부를 축열조 방향으로 보내면 끝. 셔터를 열면 빛이 금속 덩어리를 가열한다.
방전: eclipse가 오면 셔터를 열어 금속 덩어리의 복사열을 열교환기가 받는다. 열교환기가 작동유체를 가열하고 터빈을 돌린다. 기존 터빈을 그대로 쓴다 — 평소에는 거울이 열원, eclipse 시에는 축열조가 열원. 터빈 입장에서는 열원이 바뀔 뿐 나머지는 동일.
열교환의 매개는 복사다. 비접촉 용융체에 파이프를 꽂을 수는 없으니, 복사 셔터를 통한 열전달이 기본 메커니즘이다. 1,500°C 용융 금속의 복사 에너지는 스테판-볼츠만 법칙에 의해 T⁴에 비례 — 충분히 강력하다.
에너지 밀도: 비열 + 잠열
Fe-Ni 합금의 비열: ~0.5 kJ/(kg·K) = ~0.14 Wh/(kg·K). 온도 변화(ΔT)에 비례하는 **현열(sensible heat)**만 계산하면:
| 온도 범위 (ΔT) | 현열 | 비고 |
|---|---|---|
| 300°C (1,200→1,500°C) | ~42 Wh/kg | 보수적 |
| 500°C (1,000→1,500°C) | ~70 Wh/kg | 중간 |
| 1,000°C (500→1,500°C) | ~140 Wh/kg | 적극적 |
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.
잠열 보너스
Fe-Ni 합금의 융점은 ~1,430~1,450°C다. 운용 범위 1,000~1,500°C는 이 융점을 관통한다. 충전 시 금속이 녹고, 방전 시 굳는다 — 상변화(phase change).
물질이 녹을 때 온도는 오르지 않으면서 막대한 열을 흡수한다. 이것이 융해 잠열(latent heat of fusion).
철(Fe) 융해 잠열: ~270 kJ/kg ≈ 75 Wh/kg
Fe-Ni 합금: 유사 범위
현열과 잠열을 합산하면:
| 온도 범위 | 현열 | 잠열 | 합계 |
|---|---|---|---|
| 300°C (1,200→1,500°C) | ~42 | ~75 | ~117 Wh/kg |
| 500°C (1,000→1,500°C) | ~70 | ~75 | ~145 Wh/kg |
| 1,000°C (500→1,500°C) | ~140 | ~75 | ~215 Wh/kg |
잠열 하나로 에너지 밀도가 2배. 쇳덩어리가 녹았다 굳는 것만으로 리튬이온 배터리(150~270 Wh/kg)의 하단과 겹친다.
ESS 비교 (잠열 포함)
| 방식 | 에너지 밀도 | 사이클 수명 | 소재 조달 |
|---|---|---|---|
| 리튬이온 | 150~270 Wh/kg | 3,000~10,000회 | 불가 (소행성에 Li 없음) |
| 철-니켈 배터리 | 30~50 Wh/kg | 사실상 무한 | 소행성 Fe-Ni |
| 용융 Fe-Ni 축열 | 117~215 Wh/kg | 사실상 무한 | 소행성 Fe-Ni |
리튬이온과 에너지 밀도가 동급이면서, 사이클 수명은 무한이고, 소재는 소행성에서 발에 채인다. 그리고 열 → 전기 변환이 1회뿐이라 시스템 효율까지 압도적.
사이클 수명이 무한인 이유: 금속 덩어리를 뜨겁게 했다가 식히는 것이다. 화학 반응이 없다. 전극이 없다. 전해질이 없다. 열화시킬 것 자체가 없다.
규모: 왜 거대한 구 하나가 아니라 작은 유닛 60개인가
eclipse 최대 12시간, 터빈 출력 370 MW. 전부를 축열로 커버할 필요는 없다 — H₂ 연료전지와 배터리가 분담한다.
하이브리드 산정
eclipse 12시간 중:
축열조: 6시간분
H₂ 연료전지: 4시간분 (바톨라이저 연간 축적분)
철-니켈 배터리: 2시간분 (순간 부하 추종 + 백업)
축열조 6시간분 (잠열 포함):
370 MW ÷ 0.30 (터빈 효율) = ~1,233 MW(th) × 6h = ~7,400 MWh(th)
ΔT=500°C + 잠열 기준 (145 Wh/kg):
필요 질량 = 7,400,000 kWh ÷ 0.145 kWh/kg = ~51,000 톤
(잠열 미포함 시 105,000톤 → 잠열 보너스로 질량 반감)
51,000톤을 구 하나에 담으면 반경 ~12 m. 직관적으로 단순하다. 하지만 이건 안 된다. 세 가지 공학적 이유가 있다.
이유 1: 방전 시 표면적이 부족하다
eclipse 시 축열체는 복사로만 열교환기에 열을 전달한다. 복사 출력은 표면적에 비례한다 (P = ε σ A T⁴).
구형은 부피 대비 표면적이 최소인 형태다. 열을 보관할 때는 최적이지만, 열을 빠르게 뿜어낼 때는 병목이 된다.
필요 열출력: ~1,233 MW(th)
1,500°C(1,773K) 복사 출력 (ε=0.5):
P/A = ε × σ × T⁴ = 0.5 × 5.67e-8 × 1,773⁴ ≈ 280 kW/m²
필요 표면적: 1,233,000 kW ÷ 280 kW/m² ≈ 4,400 m²
반경 12m 단일 구의 표면적: 4π(12)² ≈ 1,810 m² → ❌ 부족 (필요량의 41%)
단일 구는 물리적으로 필요한 열을 뿜어낼 수 없다. 표면적이 절반도 안 된다.
반경 3 m 유닛 ~58개로 쪼개면:
유닛 1개 표면적: 4π(3)² ≈ 113 m²
58개 총 표면적: 113 × 58 ≈ 6,560 m² → ✅ 필요량의 149% (여유 있음)
유닛 1개 질량: (4/3)π(3)³ × 7,800 ≈ 880 톤
저장할 때는 각 유닛이 구형을 유지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고, 방전할 때는 복수 유닛의 총 표면적으로 충분한 열출력을 확보한다. 구형의 단점을 유닛 개수로 해결.
이유 2: 슬로싱 — 10만 톤 용암 레킹볼
51,000톤의 액체 금속이 단일 구로 떠 있을 때, 모듈이 자세 제어를 위해 조금이라도 회전하거나 진동하면 내부에 **거대한 파도(sloshing)**가 발생한다. 자기유체역학(MHD) 불안정성까지 겹치면 이 용암 덩어리가 꿀렁거리다 전자기장 구속을 뚫고 나올 위험이 있다.
반경 3 m, 880톤 유닛이면? 유동 에너지가 유닛 크기의 세제곱에 비례하므로 개별 유닛의 슬로싱 에너지는 단일 구 대비 1/10,000 이하로 줄어든다. 구속 이탈 위험이 사실상 제거된다.
이유 3: 상변화 시 부피 팽창
1,200°C(고체)와 1,500°C(액체)를 오가면 Fe-Ni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. 반경 12 m 구가 겉부터 식으면 고체 껍질이 형성되고, 내부 액체가 수축하면서 껍질이 깨져 파편이 진공으로 튀는 위험이 있다. 소형 유닛은 내부-외부 온도 구배가 균일하게 관리되어 이 문제가 해소된다.
설계 결론
축열 유닛 사양:
형상: 구형 (표면장력에 의한 자연 형성)
반경: ~3 m
질량: ~880 톤/유닛
유닛 수: ~58개 (모듈당)
총 질량: ~51,000 톤
배치: 거울 뒤 구조물 내 분산 배치 (균형추 겸용)
방전 성능:
총 표면적: ~6,560 m² (필요량 4,400 m² 대비 149%)
1,233 MW(th) 출력 여유 확보
51,000톤은 별도로 조달하는 게 아니다. 소행성에서 제련한 Fe-Ni를 녹인 채로 굳히지 않고 그냥 두면 축열 유닛이다. 모듈 구조물에 분산 배치하면 균형추도 겸한다.
3계층 ESS: 역할 분리
배터리가 벌크 ESS를 맡을 필요가 없어진다. 각 계층에 최적의 기술을 배치한다:
1차 — 벌크 (시간 단위)
└→ 용융금속 축열조
충전: 태양열 직접
방전: 축열 → 터빈 → 전기
역할: eclipse 대응, 변환 손실 최소
2차 — 버퍼 (초~분 단위)
└→ 철-니켈 배터리
충전: 잉여 전력
방전: 전기화학 (ms 응답)
역할: 순간 부하 추종, 기동 전력
3차 — 비상 + 화학 생산
└→ H₂/O₂ (바톨라이저 산출물)
연료전지 비상 발전
추진제·환원제·호흡용 산소
eclipse 장기화 시 2차 백업
이 구조가 주는 것
배터리 뱅크가 대폭 줄어든다. 이전 설계에서 12시간 eclipse를 배터리만으로 커버하면 111,000 m³가 필요했다. 축열조가 벌크를 맡으면 배터리는 2시간분 — 수천 m³로 축소.
바톨라이저의 역할이 명확해진다. 이전 글에서 바톨라이저(과충전 시 수전해)를 ESS 기능과 화학 생산을 겸하는 것으로 설명했다. 축열조가 벌크 ESS를 맡으면 바톨라이저는 화학 공장으로 포지셔닝된다 — 수소 추진제, 산소, 환원제 생산이 본업이고, 비상 발전은 부업.
소재가 동일하다. 축열조 = 용융 Fe-Ni. 배터리 = Fe-Ni 전극. 바톨라이저 = 같은 배터리에 과충전. 3계층 전부 소행성 Fe-Ni에서 나온다. 자기복제 루프에 새로운 원료가 추가되지 않는다.
이전 글(철-니켈 배터리)과의 관계
이전 글의 핵심 논지는 전부 유효하다:
- 소행성에 리튬이 없다 → 그대로
- 철-니켈 배터리의 30~50년 수명 → 그대로
- 진공에서 화재 위험 → 그대로
- 바톨라이저의 H₂/O₂ 생산 → 그대로
- 현지 제조 가능 → 그대로
보완하는 부분: 철-니켈 배터리가 벌크 ESS(eclipse 12시간 대응)까지 혼자 감당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었다. 실제로는 벌크 에너지 저장에는 열 저장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고, 배터리는 순간 응답이라는 자기 영역에서 빛난다.
각자 잘하는 걸 하면 된다. 용광로는 시간 단위 열 저장. 배터리는 밀리초 단위 전력 응답. 연료전지는 비상 대응 + 화학 생산. 하나가 전부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.
한 줄 요약
다이슨 모듈은 태양열 발전소인데 열을 전기로 바꿔 화학으로 바꿔 다시 전기로 되돌리는 건 삼중 변환 손실이다. 소행성 Fe-Ni를 녹여서 무중력에 띄워놓으면 변환 0회 충전, 1회 방전의 축열조가 된다. 상변화 잠열까지 합산하면 에너지 밀도 ~145 Wh/kg — 리튬이온과 동급. 반경 3 m 유닛 58개를 분산 배치하여 방전 시 표면적 병목, 슬로싱, 상변화 팽창을 해결한다. 소재는 전부 같은 소행성 Fe-Ni.
